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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출간: 윤효숙 장로, 2번째 수필집 <한 송이 들꽃처럼>

  • 진승태
  • 조회 : 1863
  • 2013.11.02 오후 02:22

축 출간 

윤효숙 장로, 2번째 수필집

<한 송이 들꽃처럼> 

 

 

 

 

한 송이 들꽃처럼




건지산을 산책하다 보면 이름 모를 들꽃들을 만나게 된다. 과수원 철망에 찰싹 붙어 덩굴손을 올리며 피워낸 앙증맞은 들꽃 앞에 내 발길이 머물렀다. 그 아름다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마치 젖 뗀 아기가 조막손으로 엄마 품을 파고드는 모습 같아 애처롭기까지 하다. 새벽이슬을 함빡 머금고 저마다 조신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들꽃들을 보면 자연과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손길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세상의 꽃들은 꿀을 만들어 곤충을 먹이고, 그 곤충들은 또 다른 먹이사슬을 만들어 결국 인간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성경을 보면 첫째 날에 빛(낮과 밤)이 창조되었고, 둘째 날에 물과 궁창이 창조되었다고 씌어 있다. 셋째 날에 식물 종류, 넷째 날에 해 달 별(우주), 다섯째 날에 동물들이 창조되었고, 여섯째 날에 드디어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꽃은 인간보다 훨씬 전부터 이 땅에 존재하면서 우리 인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경에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라는 표현을 썼다. 아마도 천년은 무한히 긴 시간을 뜻하는 말인 것 같다. 인간들에게는 그렇게 영원에 가까운 긴 세월도 하나님께는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과학자들은 약 1억 4천만 년 전에 꽃들이 지구상에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빛, 물, 식물, 우주, 동물, 인간의 순서로 창조되었다는 창조설을 과학자들은 진화론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지구상에 물체가 나타난 순서는 화석과 과학자들에 의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창조설을 뒷받침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셋째 날 식물 종류가 창조되었을 때 꽃들도 함께 온 지구를 덮었다. 그러나 꽃들에게 존재의 기쁨은 너무도 짧았다. 우주가 생성될 때 소행성의 충돌로 화재가 났다. 이 화재로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황 구름과 산성비는 모든 식물의 뿌리까지도 다 파괴했다. 이때 제일 먼저 지구를 회복시킨 것이 바로 양치류(고사리과) 식물이었다. 이들의 씨앗이 퍼져 꽃이 피고 다시 동물의 먹이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의 꽃들이야말로 우리에게는 가장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꽃들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말고도 이렇게 이로움을 주고 있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좋고 예쁜 꽃이라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화무십일홍’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내가 꽃을 즐겨 그렸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림 속에서나마 오래도록 남아있게 하기위해서……. 우리 집 벽면은 목단, 목련, 홍초, 맨드라미, 접시꽃, 수선화, 백합, 안투리움, 그 밖에 노란 꽃을 피워 운전자들을 기쁘게 하는 이름 모를 꽃들로 가득하다. 그 중엔 딸집에 시집보낸 것도 있지만, 이젠 그림을 걸어둘 벽면이 없을 정도다. 그림그리기를 계속하려면 미술전에 출품해야 한다. 미술전에는 최소 60호 정도를 그려야 하는데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려도 이제는 그것을 쌓아 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쉽게 남에게 줄 수도 없다. 나는 좋아서 그리지만 남들도 나처럼 좋아할지도 의문이고, 흰머리가 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야 작품 하나가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림을 배워서 좋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1호(엽서 크기) 작품을 그려 전도할 때 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막상 시작해보니 크나 작으나 표구 값은 별 차이가 나지 않아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퇴직한 뒤 너무 빠듯한 일정에 쫓겨 여유 없이 살아왔던 요즈음, 나이가 들면서 마음에 자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교회에서 봉사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은 하지 못했다. 이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일었다. 평소 가르치는 일을 했으니 다문화가정의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면 정신적인 장애를 앓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등 생각해보면 많이 있을 것 같다. 나와 생각을 같이 하는 교우들도 열 명 남짓 모였다. 이젠 그 일을 위해 일 주일에 하루를 할애해 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자 작품 판을 짜놓고도 도무지 화실에 가기가 싫었다. 드디어 화실에 가서 도구들을 챙겨왔다. 4년 동안 지도해 주신 최동순 선생님과 마지막 악수를 할 땐 섭섭한 마음이 밀려왔다. 집에 돌아와 도구들을 넣을 때 일부러 깊숙이 넣지 않고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베란다 쪽 눈에 띄는 곳에 놓았다. 그러나 한 번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기는 쉽지 않을 게다.
꽃을 피워 향기와 아름다움을 주었던 들꽃!
씨앗을 맺어 동물의 먹이가 되는 한 송이 들꽃 때문에 우리가 사는 지구는 오늘날까지 아름다울 수 있었고 그 속에 사는 내가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온 대지를 덮어 먹여 살린 한 송이 들꽃처럼, 거실의 빈자리에 겸손히 붙어있는 그림속의 들꽃처럼, 나도 그렇게 소박하고 품 넓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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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 출간: 윤효숙 장로, 2번째 수필집 <한 송이 들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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